얼마 전 과거, 이모님께서 아들과 함께 찾아오신 적이 있어요.
아버지의 재혼으로 인해 새로 생겨난 친척들이지만 그럭저럭 자연스러운 교제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딱 하나 버거운 게 있다고 하면…그 아들 즉, 사촌동생의 나이가 아직도 여섯살이라는 점[…]
제 사촌들이 어렸을 때라면 저도 어렸을 때였던지라 그때는 몰랐었고, 친척이 원체 적어서 조카 볼 일도 없던지라 지금껏 몰랐는데,
어린이의 행동력은 너무나 파워풀해서 같이 놀아주기는 커녕 그 놀이를 버텨내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더란 말이죠.
파워레인저는 무슨 넘의 엔진 포스인지 하는 괴악한 기믹으로 과거 속에서 다시 제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다용도실 바깥의 생수통은 급조형 악당 괴물이 되어 사촌의 파워레인저 거대로봇 앞에 무참히 쓰러져야만 했습니다.
거실의 크리스탈 장식품은 조각나고, 병풍에는 구멍이 송송 뚫리며, 커튼은 삼단분리되는 사건이 거의 동시에 벌어졌습니다.
에반게리온 초호기 뺨치는 폭주를 말리던 제 턱이 거대로봇의 머리와 정통으로 충돌했다거나,
태권도를 수련한 몸에게 감히 덤비냐며 제 낭심을 노리는 어린 동생의 발차기를 피하느라 고생한 건 대단한 일도 아니었어요.
아버지의 증언에 따르면 제 어릴 적에 딱 저랬다고 하시던데, 당시의 주변 어른들께 그저 사죄의 묵념을 올릴 뿐[앞산]
그 와중 갑자기, 이대로 내버려뒀다간 여식이 파괴신의 아바타로 각성할 우려를 감지하신 이모님께서 마법의 주문을 외우셨습니다.
"XX야, 컴퓨터 게임 해라"
이 말이 들려온 순간 사촌동생은 워크라이를 분출하며 이모님이 들고 계신 노트북 컴퓨터로-우리집 거지만-전력 질주하더랬습니다[뒷산]
방식은 정반대지만 손오공의 금고아가 따로 없군요-ㅈ-);
익숙한 손놀림으로 네이버로 들어가는 그녀석. 거기까지는 제게도 익숙한 공간이었지만 커서가 어디론가 더 이동하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쥬니어네이버' 라는 곳을 난생 처음 구경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자연색 중심의 알록달록한 그림들이 지천에 널렸고, 메뉴 디자인도 올망졸망한 것이 인터넷의 도원경 그 자체였어요우.
아동들이 무구하게 뛰어논다는 여기가 네이버 실시간 뉴스덧글란보다 수준이 높다는 것이 트루하겠죠?
그러나 그건 그렇다 치고, 컴퓨터 게임 하라는데 왜 쥬니버 같은 데를 들어갔지? 하는 게 당시의 제 의문.
그 의문을 풀어주듯 사촌 녀석이 메뉴를 몇 번 오가더니 플래시 게임들이 가득 모여 있는 특정 구역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저를 바라보며 같이 게임하자는 자비로운 제안을 했답니다.
곁에 앉고 7분쯤 지나서야 이 코너에 있는 게임들이 전부 1인용이라는 것을 깨달은 저는 어이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긴 했지만[…]
뭐 좋아요, 요즘 애들이 무슨 게임을 하는지나마 구경하는 것도 꽤 재미있을 것 같았죠.
GTA와 전국란스를 넘나드는 제 입장에선 아동용 게임의 유치찬란함이 왠지 그리워지기도 했고.
그래서 사촌이 '건담 게임 하자 건담' 이럴 땐 눈에 점 찍힌 SD건담 가지고 뭔 게임 만들었나보다 하고 슬며시 미소마저 지었다죠.
(이하 캡처 화면은 나중에 따로 수집한 것들입니다)

게임시작화면.
….
…….
…이게 뭐야?!
엄청 그럴싸한 화면을 보고 넋이 나가버렸습니다. 게다가 중국어판 게임이라니[…]

게임진행화면.
….
…….
…이게 뭐야?!(2)
엄청 친숙한 유닛들이 눈에 들어와! 비록 건담 X와 관련된 건 하나도 없지만.
저는 이 시점에서 자신의 '덕심' 을 자극하는 요소가 살짜쿵이나마 나왔다는 점을 들어 의심을 시작했어야 했는지도 몰라요우.
한 5분쯤 열심히 키를 두드리던 사촌은 지겹다며 다른 게임을 하자고 제안-어차피 저는 구경만 해야 하는 거지만.
다른 메뉴 어딘가를 들어가더니 또다른 슈팅 게임을 선택했습니다.

게임시작화면.
….
…….
…이게 뭐야?!(3)
우상단의 '동방프로젝트 슈팅 게임입니다' 라는 설명이 번뜩번뜩 빛나 보입니다.

게임진행화면.
….
…….
…사기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우선, 치르노를 간략화한 저 아이콘 표현은 예술의 경지에 다다랐군요[앞산]
근데 그건 둘째치고 동인 게임의 동인-…….-같은 게 이런 사이트에도 다 올라온다 싶습니다.
슈팅은 이제 질렸는지 싸우는 게임을 하고 싶어하던 사촌, 바로 이걸 고릅니다.

대체 어디서 이런 걸 다 만드는 거야 llOTL
이 무렵이 컴퓨터를 켠 시점에서 한 30분 지났더군요. 슬슬 이모님께서 돌아가자는 이야기를 꺼내시자 다급해진 사촌.
"5분만! 5분만 하고! 하쿠레이만 하고!"
박려(博麗)? 아니 설마요….

….
…….
…이게 뭐야?!(4)
얼굴이 발그레해서는 레이무 캐릭을 조작하며 요정들과 격투를 벌이는 사촌을 보며 벼라별 생각이 다 들었[…]
결국 이모님 손에 이끌려 아쉬운 표정으로 돌아가는 사촌을 배웅한 뒤, 덩그러니 노트북 익스창에 남겨진 쥬니버를 손수 탐험.

이런 건 있을 만 하겠지 으음.

미묘하군요[…]

더빙판으로도 있으니까 뭐-ㅈ-);

슬슬 올 것이 오는 기분[앞산]
보컬로이드 2로 만들어진 음반의 주인공, 이라는 표현은 뭐랄까, 엄청나게 빙빙 돌려 묘사한 것 같군요[…]

'틀린 답을 고르는 게임입니다'
'하지만 숫자의 합이
9가 될 경우엔 맞는 답을 골라주세요'
…….

동방이 인기로군[…]
설명 텍스트 적은 사람도 여기까지 장르를 막론하고 '올바른 인물명' 을 적어주고 있다는 사실에 그 내공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건 아직 우리나라에 안 들어오지 않았나요 OTL
게임도 일본 쪽에서 그냥 가져와서 일본어가 그대로 찍혀나오는군요-ㅈ-);
이런 게임들을 통해 난생 처음 보는 문자와 캐릭터에 흥미를 갖고, 나중에 그걸 더 파고들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